교사의 감식안(전문적 판단)은 평가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수행평가 채점 기준을 두고 “교사의 감식안(專門的 판단)”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고민은 오래전부터 교육학계에서도 계속된 논의 중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수량이 측정한 형태로 수행평가 채점 기준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세분화해 놓으면 공정성과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즈너(Elliot W. Eisner)의 예술적 교육과정이 받았던 비판 또한 “평가에 대한 객관적·양적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교사의 전문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평가의 ‘엄정한 객관성’만을 강조할 경우, 오히려 학생의 학습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나는 그래서 “학생이 기본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해 왔고, 그 과정을 평가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내 감식안을 믿고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평가한다고 스스로를 신뢰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사의 감식안이 충분히 평가의 신뢰도를 갖추게 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1. 루브릭과 교사 감식안의 보완적 결합

  • 수량화되고 명료한 루브릭(채점기준표)의 진술문은 평가의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지만, 학생들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학습 과정을 세세하게 담아내기는 어렵다.
  • 반면 교사의 감식안은 수업 및 과제 수행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루브릭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학생의 태도, 노력, 발전 정도 등)을 포착하고 반영할 수 있다.
  • 따라서 루브릭을 ‘고정 불변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이를 교사의 감식안을 뒷받침하는 보조적 장치로 활용한다면,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모두 높일 수 있다.

2. 전문적 판단(감식안)은 ‘연수’와 ‘공동체적 검토’로 신뢰도 확보 가능

  • “교사의 전문성이 곧 평가 결과의 신뢰도를 담보해주느냐”는 우려가 있지만, 실제로 동료 교사와의 협의(공동 채점, 사례 공유, 워크숍 등), 채점 연수, 사례 검토 지침 등을 통해 교사의 판단 정확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결국 IB에서도 루브릭 기반의 채점을 진행하고 외부 평가를 다시 한 번 진행하는 것도 이러한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으로 판단된다.
  • 서로 다른 동교과 교사들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성취기준 및 루브릭에 기반해 협의하여 채점하면, 평가 결과의 일관성과 신뢰도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주관적 판단이 아닌, 교사의 ‘집단적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3. 과정 중심 평가를 위한 필수 요소

  • 수행평가는 결과물뿐 아니라 학습 과정 전반을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과정에서 드러나는 학생의 시도, 실패, 재도전, 수정, 성장 등을 제대로 살피려면 교사 감식안이 반드시 요구된다.
  • 예컨대 루브릭에 “지속적인 발전 과정의 증거 제시” 같은 항목을 넣더라도, 실제로 ‘누가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 세밀히 파악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4. 평가 공정성(공정성 vs. 형평성)의 균형

  • 우리나라에서 강조하는 ‘평가의 엄정함’은 엄밀히 말해 공정성(fairness)에 가깝다. 하지만 공정성과 형평성(equity)은 다소 다른 차원이다.
  • “노력은 했으나 실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라는 시각도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기량과 노력, 발전 정도를 반영하는 것 역시 교육적인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옹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 교사의 감식안을 활용하면 공정성(동일 기준 적용)과 형평성(개별 학생의 상황 반영) 사이에서 보다 유연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5. 선행 연구와의 연결: 루브릭+관찰+피드백

  • 수행평가 연구 흐름을 보면, ‘루브릭+관찰 기록+피드백’의 삼박자가 제시된다. 이는 교사의 주관적 판단이 루브릭이라는 객관적 기준과 함께 충분히 신뢰도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 교사가 학생들의 과제 수행 모습을 문서화(관찰일지, 체점 예시 모음 등)하고, 수시로 학생에게 피드백을 제공하며, 루브릭을 최종 점수 산정의 보조 수단으로 삼는다면, 평가의 타당도신뢰도 모두 보장할 수 있다.
  • 따라서 이러한 루브릭을 작성하거나, 혹은 학생들의 과제 수행 모습을 문서화하는 것을 효율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과제 수행에 대한 관찰 기록이 쉽지 않기 때문에 기록을 최대한 하면서 학습의 과정에 대한 자기 평가 및 동료 평가를 참조할 수 있도록 자동화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기록하는 방법을 주구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1. 루브릭과 교사의 감식안을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하면 객관성과 주관성을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다.
  2. 교사의 감식안은 연수, 협의, 공동체적 채점 등을 통해 더욱 신뢰도 높게 운영될 수 있다.
  3. 수행평가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 중심 평가이므로, 교사의 전문적·미시적 판단이 불가피하고, 이 역시 평가의 공정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4. 노력과 발전 정도를 반영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평가이며, 엄정성만 강조해서는 놓치는 부분이 많다. 교사의 감식안은 이를 보완해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민원이 무서운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학생들을 학습하게 하는 목적이 대학 진학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정한 심판으로만 존재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이 맞는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하면서 반대로 가려고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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