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란 무엇인가

최근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기존 시스템들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봅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 올려진 제도와 규범들은 어느새 ‘다수의 합의’라는 미명 하에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고, 그 자리를 개인의 편의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목소리가 빠르게 채워가고 있습니다. 마치 잘 짜인 옷감의 올이 하나둘 풀리며 전체적인 형태가 흐트러지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에는 시스템이 ‘당위’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전통이니까’, ‘원래 그래왔으니까’, ‘다수를 위해 소수는 희생할 수 있으니까’와 같은 암묵적인 전제들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동력이었습니다. 개인은 시스템의 일부로서, 때로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시스템의 안정성에 기여했습니다. 그렇기에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거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변화는 더디고, 안정은 견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개인의 가치가 시스템보다 우선시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당위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 행복 추구가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과거에는 개인이 시스템에 순응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오히려 개인이 시스템보다 우선시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시스템을 무시하고 자신에게만 맞추라고 억지를 부리는, 소위 ‘진상’이라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조차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물론 개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성, 즉 개인의 지나친 이기심이 공공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합니다. 시스템은 효율성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잘 설계된 시스템은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효율성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는 곧 시간과 자원의 낭비로 이어집니다. 수많은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시스템의 붕괴는 연쇄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시스템은 인간 삶에 여유를 제공하고,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틀이기도 합니다. 예측 가능한 규칙과 절차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개인이 각자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이는 마치 잘 닦인 도로와 같습니다. 도로가 없으면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험난한 길을 헤쳐 나가야 하지만, 잘 닦인 도로가 있으면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번영해 온 것도, 앞으로 더 번영해 갈 것도 결국 시스템의 힘입니다. 농경 사회의 질서, 산업 사회의 분업, 정보화 사회의 네트워크, 이 모든 것이 정교한 시스템을 통해 구축되고 발전해 왔습니다.

다만, 우리는 지금 수많은 당위가 무너져가는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과거처럼 ‘원래 그래왔으니까’라는 말로 시스템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당위에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설득해야 하는 과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철학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암묵적인 사회 규칙 하나하나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사소한 규칙 하나에도 그 존재 이유를 물을 것입니다. “왜 이 신호등을 지켜야 하나요?”, “왜 줄을 서야 하나요?”, “왜 이 세금을 내야 하나요?”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규칙을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 더욱 발전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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