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교육에 대한 고찰

자녀를 키우다 보면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보통 두 가지 경우였다. 영어를 좀 하는 것 같으니까 시켜볼까? 하는 생각과, 요즘 글로벌 시대고 영어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많으니까… 하는 생각이 또 하나이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고등학교의 사명이 마치 서울대학교 입학인 것처럼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자퇴를 몇 백, 몇 천 명씩 하는 학교를 기를 쓰고 보내려고 한다.

우리는 교육을 할 때 목표를 생각해야 한다. 교육을 왜 하는가? 암기 잘하는 아이들 몇 명이 서울대 가도록 다 같이 기도하는 것이 목표인가?

결국 교육을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사회의 문제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우리 사회의 특색과 비전이 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육의 목표는 수많은 실제적 상황 속에서 안전한 실수를 몇 번이고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최대한의 투자로 많은 실제적인 상황을 제공해야 하고, 그 속에서 안전하게 실패하면서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이 목표면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암기 좀 못하면 어떤가. 규칙도 좀 위반하면 어떤가. 학교 좀 안 나오면 어떤가?

서울로 대학을 보내고, 서울에서 취직하고, 서울에서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과연 서울에 집은 살 수 있을까?

지방의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한다. 굳이 서울에 가지 않더라도 양질의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대학을 지원하고, 대학의 혁신을 통해 아이들이 우리 지역 대학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되고, 그런 우수한 인재들을 활용하기 위해 지방에 더 많은 인프라가 투자되고, 그런 인프라 속에서 가정을 이루고… 이것이 오히려 진정한 저출산에 대한 해결책 아닐까?

결국 지역이다. 내가 몸담고 살고 있는 곳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뭔가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내에서 모든 것이 해소될 수 있도록 교육 혁신에 총력을 가해야 한다.

교육의 본질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합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 커뮤니티가 훌륭하다면 먼곳까지 불편하게 가겠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로 대학을 보냈다고 해서 갈채를 보내서는 안 된다. 우리 지역에서 우리와 함께 숨쉬고 살아갈 아이들이 열패감을 느끼지 않도록, 또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인식부터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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